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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쌍둥이 자매 생이별…"언니 찾아주세요"

워싱턴 일원에서 노숙자 생활을 해온 쌍둥이 한인 입양아 민미경·미영 자매가 최근 엇갈림속에 헤어지면서 서로를 애타게 찾고 있다.   두 자매는 지난해 12월 버지니아 애난데일 지역에서 무단침입 등의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페어팩스 구치소에 수감됐다. 지난달 말께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언니 미경은 1월 20일, 미영은 27일로 일주일의 시간차를 두고 나오면서 서로의 소식을 알 수 없게 됐다. 동생 미영은 지난 1년 가까이 자신들을 도와 온 장두영 목사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 지난달 말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작년 봄 처음 만났을 때 보다 부쩍 마르고 왜소해진 미영은 “언니를 찾아야 된다. 언니를 찾아달라”는 말을 계속 되뇌였다. 또 “언니를 만나면 같이 절에 들어가 살고 싶다. 수녀든 비구니든 종교적으로, 신성하게 살고 싶다. 우리 둘 다 가정을 이루고 아기를 낳는 정상적인 삶은 불가능할 거 같다”고 말했다.   이날 미영은 한달 반 정도 구치소에서의 생활이 너무 괴로웠다며 “다시는 감옥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두 자매는 앞서 지난해 5월에도 난동 혐의 등으로 스태포드 경찰에 잡혀 구치소에 약 3달 가까이 지낸 바 있다.   미영은 “구치소에서 나오기 전에 언니가 일주일 전에 석방됐다는걸 들었지만 그럴리 없다”면서 “분명히 그 후에도 (딴 방에 수감된) 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누군가 언니를 해치고 석방됐다고 하는 걸까봐 겁난다”며 불안해했다.   미영은 믿지 못했지만 언니 미경은 1월 20일 석방된 것으로 확인됐다.   미영은 이날 양부모와 지내던 어린 시절에 대해 묻는 질문에 “그 사람들을 ‘양부모’라고 하지 마라. 유괴자다. 이 세상에서 진실한 건 오직 가족뿐이다. 내 가족은 한국에 있는 아빠와 엄마, 할머니 뿐이다”라며 격분했다. 또 “그 사람은 자신을 ‘아빠’라고 칭했지만 우리 아빠는 한국에 있다. 우리한테 ‘돈 벌기 위해 너희를 데려왔다. 옷과 집을 제공해줬으니 내 할일은 다 했다’고 까지 했다”며 언성을 높였다.   1981년생인 민미경, 미영 자매는 1987년께 미국으로 입양됐다. 언제부터인지 집을 나와 거리를 떠돌기 시작했으며, 2010년부터는 메릴랜드, DC 등지에서 목격됐다. 그동안 여러 한인 단체와 교회, 개인 등이 도움의 손길을 건넸으나 한 곳에서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오랜 노숙자 생활로 경계심이 크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어는 잘 하지만 횡설수설하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견이 다르면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 정상적인 대화가 힘들다. 미영은 이후 약 일주일 정도 장두영 목사의 집에서 지내다 이후 한인이 운영하는 사찰을 찾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유승림 기자 [email protected]

2012-02-09

노숙자 자매, 또 구치소에…한인사회 자매돕기 활발

워싱턴 일원에서 노숙자 생활을 해온 한인 입양아 쌍둥이 자매 민미경·미영양이 애난데일에서 체포돼 페어팩스 카운티 구치소에 수감됐다. 이에 한인사회에서 이들 자매를 돕기 위한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14일 페어팩스카운티 경찰국 메이슨 디스트릭트 경찰서의 건 리 서장은 두 자매를 지난 수개월간 보살펴 온 장두영 목사와 면담을 갖고 적극 도울 것을 약속했다. 리 서장은 이달 초 애난데일을 방황하던 두 자매가 무단침입 등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면서 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이날 장 목사는 그동안 자매들을 돌보며 겪은 일들을 비롯해 한국의 입양기관, 미국 관계자 등을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서장에게 전달하고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리 서장은 “자매가 미국 시민권자인데다 한국어가 서툴고, 한국에 있는 부친이 이들을 책임질 만한 처지가 아니라 한국으로 보내는 것도 해결책은 아닌 것 같다”며 “일단은 구치소에서 나온 후 자매가 갈 곳을 마련하고, 이들을 전문적으로 도와줄 기관을 연결해 줄 수 있도록 힘써보자”고 말했다.   장 목사는 “작년부터 지금까지 메릴랜드, 버지니아 지역에서 아이들을 도와준 한인들이 많지만 자매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한곳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해 어려움이 있었다”며 “강제로라도 정신 감정을 실시하고, 필요시 치료를 받도록 해주는 것이 궁극적인 해결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리 서장은 페어팩스 구치소 및 우드번 정신건강센터 등 관계자들과 직접 통화한 후, 이미 만 30세로 성인인 자매가 “우리는 정상”이라고 버티고 있어 강제로 치료를 받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즉, 스스로 자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거나 남을 해치겠다고 위협하는 등 극도의 정신적 위험성을 보이기 전에는 정신 감정을 실시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 말이다.   메릴랜드에 거주하는 송주섭(랜돌프·휄로십 데이케어센터 한국인 담당관)씨도 자매를 돕기 위해 장 목사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고 있다. 사회복지사로 한인복지센터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송 담당관은 조만간 장 목사와 함께 구치소를 방문하고, 지원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1981년생인 자매는 여섯살 때인 1987년께 메릴랜드의 미국인 가정에 입양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교를 졸업한 후 독립, 네바다주에서 살다 여러가지 문제로 정신적 상처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작년부터 메릴랜드로 다시 돌아와 노숙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그동안 한인 개인과 단체, 교회 등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었다. 영어는 잘 하지만 횡설수설하고 소리를 지르는 등 정상적인 대화는 거의 힘든 상태다.   유승림 기자 [email protected]

2011-12-14

DC 노숙자 입양 자매 미경·미영씨 지금은…한인들 온정 베풀지만, 머물 곳 없어 배회만…

워싱턴 일원을 떠돌며 노숙자 생활을 하다 경찰에 체포됐던 민미경, 미영(30) 쌍둥이 자매가 최근 구치소를 나와 버지니아 애난데일 등을 배회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매는 5월말 이들을 도우려던 한 여성의 집에서 난동을 부려 스태포드 카운티 경찰에 체포된 후 구치소에서 지내왔다. 여러차례 재판이 연기되며 석달 넘게 시간을 끌다 결국 지난달 중순께 기각 판정을 받고 무혐의로 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올 봄부터 자매를 도와온 장두영 목사는 “자매가 구치소에서 나온 후 연락을 해와 밤에는 사무실에서 잘 수 있도록 해줬었다”며 “열흘 정도 지켜보다 조심스럽게 ‘정신 상담과 치료를 받아보자’고 권유했더니 3주 전 쯤 화를 내며 나가버렸다”고 말했다.  장 목사는 일본 사찰에 데려다 달라는 자매의 요청에 따라 데려다 줬고 이후 지금까지 만나진 계속 소식은 듣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 자매가 콜럼비아 파이크, 리틀리버 턴파이크 등 도로변과 한인 상점이 밀집된 쇼핑몰에서 목격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 쯤이다.  애난데일의 엘리자베스 백화점의 배 사장은 “3주 전 쯤 가게 앞을 지나가는 애들을 보고 밥을 먹이고 목욕하라고 돈을 좀 쥐어보냈다”며 “둘다 앳된 얼굴에 착해보여 길거리에서 지내는게 걱정도 되고 안쓰러웠다”고 말했다.  서울 PC방에도 여러차례 다녀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업소 관계자는 “잠은 안 잤지만 추울 때 몇 번 와서 몸을 녹이고 간 적이 있다”며 “자매에 대해 잘 몰랐을 때 소리를 지르고 문제를 일으켜 경찰을 부른 적이 있다. 나중에 장목사로부터 ‘자매가 찾아오면 머물수 있도록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설명을 듣고 그렇게 해줬다”고 말했다.  의류를 판매하는 또 다른 한인 업소에서도 “자매가 문을 열고 기웃 거리길래 들어오라고 해서 추울 때 입을 수 있도록 겉옷을 두벌 줘서 보냈다”며 “밤에 어디서 자는지 모르지만 곧 기온이 많이 떨어진다니 더 걱정”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들 자매는 17일에는 페어팩스 H마트 인근을 배회하는 것으로 목격됐다.  워싱턴 총영사관에 따르면 민미경, 미경 자매는 1981년생 쌍둥이로 1987년께 미국 네바다의 각각 다른 가정에 입양된 시민권자다. 이후 언제인가 집을 나와 떠돌이 생활을 해왔으며, 지난해 메릴랜드 지역을 거쳐 올해 초부터 DC 영사관 인근 풀숲에서 지내왔다. 지난 5월 자매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한국인이다. 미국 사람들이 우리를 놀리고 괴롭혔다. 한국으로 보내달라”는 등 똑같은 말만 반복해 더 이상의 자세한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동안 자매를 만난 여러 한인들과 교회, 기관 등이 도움을 제공하기도 했으나 오래 지나지 않아 거처를 옮겨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자매와 접촉했던 사람들의 상당수는 ”어떻게든 도우려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정상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고 설명했다. 일부는 도움을 주다가 오히려 자매가 ‘감금했다’, ‘괴롭힌다’며 경찰에 신고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 목사는 “자매가 셸터(보호소)에도 있다가 뛰쳐나왔고, 정신병원에도 들어갔다가 도망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부모를 찾아 무조건 한국으로 가겠다고 하는데 설령 비행기표를 줘서 한국으로 보내도 그 이후에 어떻게 살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입양인 보호 기관과 연락해 자매를 한국으로 보내고 정신 치료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추진중”이라며 “일단은 그 때까지 애들이 안심하고 자기들끼리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줄 분을 찾는다”고 덧붙였다. ▷문의: 703-232-2767  유승림 기자 [email protected]

2011-10-18

"아무도 못 믿는 불쌍한 자매,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았으면"

“이젠 한국 사람도 못 믿겠다. 다를거라 생각했는데….”   지난 두달간 DC 노숙자 민미경·미영 자매를 돌봐온 장두영 목사(사진). 며칠 전 자매가 한 말이 가슴에 맺혀 사라지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았으면 자신들을 도우려는 사람들까지 저렇게 미워할까. <참조 본보 5월 27일 A-1>   두달 전 처음 걸려온 자매의 전화는 장 목사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들기 전까지 자매에 대한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 얼마 전 자매가 난동 혐의로 구치소에 수감된 후로는 더 그렇다. 자매를 하룻밤 재워줄 수 있는 한인 여성을 수소문 해 집까지 데려다 줬던게 화근이었다.   “하룻밤이라도 깨끗이 씻고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해주려던 게….” 말릴 수 없을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통에 미국인 남편이 경찰에 신고를 했고, 자매는 스태포드 카운티 구치소에 수감됐다. 애난데일 사무실에서 막히지 않고 달려도 30~40분, 막히면 길 위에서 속을 태우면서도 장 목사는 하루가 멀다하고 자매를 보러 갔다. ‘이제는 한국 사람도 못 믿겠다’고 악을 써도 조금이나마 남아있을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두 자매가 구치소 수감된 후에는 일이 복잡해졌다. 이제는 단순히 먹고 자는 문제가 아니라 전과자가 되느냐 마느냐라는 큰 장애물이 생겼기 때문이다. 경범죄로 기소된 이들 자매의 재판날짜는 다음달 21일이다. 그 전까지 어떻게든 자매에 대한 혐의를 없애보려 여기저기 도움을 구하는 중이다.   “정신질환이 있으니 재판을 받을 수 없음을 증명하면 되지만 문제는 자매가 완강히 버티는 겁니다. 지난번 면회 때 ‘전문의 소견을 받아보라’고 설득하다가 40분 내내 원망섞인 말만 듣고 왔습니다. 심지어 ‘그럴거면 그냥 돌아서 가버려라’라고 까지 하더군요.”   이들에게 선임된 국선 변호사 조차 ‘정신질환이 있으니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을 받도록 해달라’고 판사에게 신청을 한 상태다. 그러나 자매가 동의를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장 목사는 전했다.   한숨 짓는 장 목사의 얼굴이 한달 전보다 많이 야위었다. 그래도 표정을 밝았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놓지 않은 덕이다.   그는 “지난해 자매를 도와줬던 사회복지사와 강필호 영사 등의 편지를 받아서 변호사와 판사에게 보내보려 한다”면서 “그저 아이들이 이번 일로 상처를 더 받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아직 재판까지 한달 정도 시간이 있으니 법에 대해 잘 아는 분들의 도움과 연락을 바란다”고 덧붙였다.   1981년생 쌍둥이인 이들 자매는 1987년께 네바다의 미국인 가정에 각각 입양됐다. 가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지난해부터 워싱턴 일원에서 노숙자로 지내며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의 상처와 아픔이 큰 탓인지 도와주려는 사람들과 잦은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나로 선교교회 개척 목사인 장 목사가 두달 전부터 이들을 도와왔다. ▷문의: 703-232-2767   유승림 기자 [email protected]

2011-06-13

"노숙 입양자매 돕겠다"…줄잇는 한인들의 사랑

길 잃은 쌍둥이 입양 자매의 '차가운 방황'에 한인사회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지난 1987년 미국인 가정에 입양됐다가 가출해 워싱턴DC 영사관 인근을 배회하며 거리에서 생활하는 민미경.미영 자매의 사연〈5월27일자 A-1면.사진>을 접한 한인들의 사랑이 쇄도하고 있다. 특히 보도를 접한 자매의 친척이 27일 본지에 연락을 해와 피붙이도 만나게 됐다. 라크레센타에 거주하는 송정숙씨는 "아침 신문을 보고 자매가 20년 전 입양된 고모의 외손녀들임을 바로 알았다"면서 "불쌍한 애들이 마음의 위로를 받고 몸을 추스리고 일자리를 찾을 때까지 돌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매의 어머니는 오래 전 돌아가셨다"면서 "한국에 계신 고모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렸더니 하루빨리 보고 싶다며 흐느끼시더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워싱턴 총영사관과 워싱턴 사랑나눔센터와 연락해 자매를 어떻게 도울 지 방법을 찾겠다"고 말했다. 이날 본지와 워싱턴 중앙일보엔 입양 자매를 직접 돕고 싶다며 방법을 알려달라는 독지가들의 문의가 줄을 이었다. 자신을 민 사(67.LA)씨라고 밝힌 한인은 "자매에게 살 공간을 마련해주겠다"는 뜻을 알려왔다. 사씨는 "신문을 보다가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자매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며 잠자리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자매를 돕고 있는 사랑나눔센터 장두영 목사는 "자매가 오랜 가출로 인해 대인 기피증 등 정신적 피해도 심한 상태"라고 전했다. 자매를 돕고 싶다는 한인들은 "안타깝고 슬픔에 가슴을 쳤다"며 "우선 정신적·육체적으로 피폐한 자매를 보살피는 게 중요하지만, 그들이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는 만큼 한국정부 기관과 보호 단체들이 나서서 자매를 '끌어 안아' 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장열.김정균 기자 워싱턴=유승림 기자

2011-05-27

DC 노숙자 된 '입양인 자매' 민미경·미영씨…"엄마 만나러 한국 가고파"

자매는 집이 없다. 스스로 미국인이란 사실도 잊었다. 그저 기억에도 없는 부모를 찾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던 지난 12일 오후. 워싱턴 DC 영사관 건물 옆 풀숲에서 민미경, 미영 자매를 만났다. 첫 마디는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그 다음은 영어로 “우리는 한국 사람이다. 한국에 가고 싶다”였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질끈 묶은 긴 머리, 앳된 얼굴이 학생 같기만 한데 행색은 초라했다. 겹겹이 덧입은 옷에는 더러움이 잔뜩 묻어있었다. 이들 자매는 노숙자다.  미경은 “우리는 한국 사람인데 한국에 안 보내준다. 비행기 표도 살 수 없다.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미영 역시 같은 말만 반복했다. 누군가 한국의 부모에게서 자신들을 떼어내 미국에 데려왔다고 했다. 미영은 “우린 한국 사람이라 무시를 많이 받았다. 백인, 흑인들이 우릴 놀렸다. 이젠 갈데도 없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노숙자 생활을 했는지, 부모는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대화를 시도했지만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고, 주변을 경계하는지 계속해서 두리번 거렸다. “경찰이 우리를 때렸다. 중국 식당 직원들이 우리가 모아둔 돈을 훔쳤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영어를 구사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고, 한국말은 간단한 인삿말과 ‘밥, 김치, 한국’ 정도만 아는 수준이었다.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영사관을 찾아 들어갔다. 직원들 역시 이들 자매에 대해 알고 있었다.  강필호 영사에 따르면 이들 자매는 1981년생 쌍둥이로 1987년께 미국에 입양됐다. 네바다의 서로 다른 두 가정에 입양됐으나 언제인지 가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자매가 워싱턴 DC에 나타난 것은 올해 1월. 한참 춥던 어느날 밤 9시 누군가 자매를 영사관 앞에 데려다 준 것이다. 강 영사는 “그때부터 이들 자매를 돕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고, 한국의 동방사회복지관에도 연락을 해봤다”며 자매에 대한 기록이 담긴 서류철을 내보였다. 그는 “문제는 자매가 시민권자라 한국 정부가 여권을 발급할 수 없는 상황인데다, 친가족을 찾으려면 본인이 신청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셸터(보호소)는 절대 가기 싫어 하고, 가끔 영사관 민원실에 들어와서 ‘(돈 벌게) 일을 시켜달라. 하룻밤 재워달라. 여권 만들어달라. 비행기 표를 달라’는 등의 난동을 부리기도 해 곤란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영사관을 나오자 밖에는 아직도 자매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얼마 전부터 자신들을 도와준 사랑나눔센터의 장두영 목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들은 장 목사가 사들고 온 김치 한 봉지와 흰 밥을 받아들고는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그러더니 말없이 허겁지겁 밥과 김치를 먹기 시작했다. “맛있냐”고 물으니 “김치는 정말 오랜만이다. 너무 맛있다”고 답했다. 허기가 가시자 또 다시 “우리가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다. 부모님을 만나러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장 목사는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정신상담센터 같은 곳에도 들어갔다가 도망쳐 나온 것 같다. 한국에 보내도 부모를 찾을 수나 있을지, 만나도 제대로 생활은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밤에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머물 곳이라도 구해줘야 할 텐데…”라며 말을 흐렸다.    길 위에서 위태로운 하루 하루를 버티는 한국인 자매. 이들의 “다음에 또 올거냐”는 말이 자꾸 발길을 붙잡았다. ▷문의: 703-232-2767 (장두영 목사)  유승림 기자 [email protected]

2011-05-26

[미국 입양 한인들의 '빛과 그림자'] 노숙자로 떠돌이 쌍둥이 자매 "부모 계신 한국에 보내주세요"

한 해 1000명이 넘는 한국 아이들이 미국으로 입양됐다. 미국 가정에 입양돼 자라면서 정체성에 번민하고 또 한 번 버림받는 아이들도 늘었다. 2007년부터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고자 한국은 해외 입양아동 수를 제한하는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번에는 쿼터제로 입양이 막힌 한인 부모의 마음이 타들어갔다. 해외 입양과 관련한 '빛과 그림자'를 조명해본다. 자매는 집이 없다. 스스로 미국인이란 사실도 잊었다. 그저 기억에도 없는 부모를 찾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던 지난 12일 오후. 워싱턴 DC 영사관 건물 옆 풀숲에서 민미경.미영 자매를 만났다. 첫 마디는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그 다음은 영어로 "우리는 한국 사람이다. 한국에 가고 싶다"였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질끈 묶은 긴 머리 앳된 얼굴이 학생 같기만 한데 행색은 초라했다. 겹겹이 덧입은 옷에는 더러움이 잔뜩 묻어있었다. 이들 자매는 노숙자다. 미경은 "우리는 한국 사람인데 한국에 안 보내준다. 비행기 표도 살 수 없다.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미영 역시 같은 말만 반복했다. 누군가 한국의 부모에게서 자신들을 떼어내 미국에 데려왔다고 했다. 미영은 "우린 한국 사람이라 무시를 많이 받았다. 백인 흑인들이 우릴 놀렸다. 이젠 갈데도 없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노숙자 생활을 했는지 부모는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대화를 시도했지만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고, 주변을 경계하는지 계속해서 두리번 거렸다. “경찰이 우리를 때렸다. 중국 식당 직원들이 우리가 모아둔 돈을 훔쳤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영어를 구사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고, 한국말은 간단한 인삿말과 ‘밥, 김치, 한국’ 정도만 아는 수준이었다.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영사관을 찾아 들어갔다. 직원들 역시 이들 자매에 대해 알고 있었다.   강필호 영사에 따르면 이들 자매는 1981년생 쌍둥이로 1987년께 미국에 입양됐다. 네바다의 서로 다른 두 가정에 입양됐으나 언제인지 가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자매가 워싱턴 DC에 나타난 것은 올해 1월. 한참 춥던 어느날 밤 9시 누군가 자매를 영사관 앞에 데려다 준 것이다. 강 영사는 “그때부터 이들 자매를 돕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고, 한국의 동방사회복지관에도 연락을 해봤다”며 자매에 대한 기록이 담긴 서류철을 내보였다. 그는 “문제는 자매가 시민권자라 한국 정부가 여권을 발급할 수 없는 상황인데다, 친가족을 찾으려면 본인이 신청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셸터(보호소)는 절대 가기 싫어 하고, 가끔 영사관 민원실에 들어와서 ‘(돈 벌게) 일을 시켜달라. 하룻밤 재워달라. 여권 만들어달라. 비행기 표를 달라’는 등의 난동을 부리기도 해 곤란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영사관을 나오자 밖에는 아직도 자매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얼마 전부터 자신들을 도와준 사랑나눔센터의 장두영 목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들은 장 목사가 사들고 온 김치 한 봉지와 흰 밥을 받아들고는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그러더니 말없이 허겁지겁 밥과 김치를 먹기 시작했다. “맛있냐”고 물으니 “김치는 정말 오랜만이다. 너무 맛있다”고 답했다. 허기가 가시자 또 다시 “우리가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다. 부모님을 만나러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장 목사는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정신상담센터 같은 곳에도 들어갔다가 도망쳐 나온 것 같다. 한국에 보내도 부모를 찾을 수나 있을지, 만나도 제대로 생활은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밤에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머물 곳이라도 구해줘야 할 텐데…”라며 말을 흐렸다.     길 위에서 위태로운 하루 하루를 버티는 한국인 자매. 이들의 “다음에 또 올거냐”는 말이 자꾸 발길을 붙잡았다. ▶문의 (213)368-2607 해피빌리지 담당자 유승림 기자 [email protected]

2011-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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